어려웠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진행하는 꿈을 키웠고 박수홍 팬클럽 회장으로 시작해 단번에 22살이라는 나이로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유학을 다녀온 뒤 인기가 추락했으나 제작발표회 사회자로서는 1순위로 섭외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경림.
남편 박정훈과 결혼하고 아들 박민준을 키우며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림의 모든 부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 박경림 프로필
- 과거 어려웠던 박경림 집안 환경 및 가정사
- 최연소 대상 수상 전성기가 '착각의 늪' 시절
- 유학의 길 선택 그리고 남편 박정훈과 결혼 스토리
- 박경림 인기 추락 이유 그러나 섭외 1순위와 근황
1. 박경림 프로필
먼저 박경림은 1978년 고향 서울 서대문구 갈현동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1998년 라디오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를 통해 데뷔한 인물로서 그동안 시트콤 '뉴 논스톱' 외에 수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며 최근에는 주로 각종 영화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MC를 맡으며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으로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경림
생년월일 - 1978년 12월 8일 생으로 박경림 나이 만 42세
키 - 160cm, 몸무게 - 51kg, 혈액형 - AB형
학력 - 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가족 - 남편 박정훈, 아들 박민준
그 외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채널 : 박경림 TV) 사용함.
2. 과거 어려웠던 박경림 집안 환경 및 가정사
우선 박경림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 박우철은 경북 김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해병대에 지원해 월남전으로 파병하여 팔은 탄환 관통상을 입었고, 다리에는 파편이 박혔고, 어깨는 백병전을 하다가 대검에 찔렸을 정도로 힘들었던 군 생활을 거친 뒤 1968년에 제대를 하게 됩니다.
그 후 박경림 아버지는 남아있던 돈으로 장사도하고 연탄 가게 하면서 생활해오다가 박경림 어머니 이혜선을 만나 결혼하여 부엌도 없는 집에 방하나만 덩그러니 있던 집에서 힘겹게 살아 가게 되는데 이런 집 마저 1978년 허물어 내려앉게 되죠.
그렇게 참 힘든 시절 서대문구 갈현동에서 박경림은 서울 '경', 수풀 '림'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막내로 태어나게 됩니다. 당시 집안이 여유롭지 않았던 탓에 어린 시절 박경림은 양말도 신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되나 추후 박경림 아버지는 하고 있던 자영업을 그만두고 CBS 기능직 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집안 환경이 나아지게 되었으나 IMF가 찾아오면서 직업을 잃은 뒤 학교에서 수위로 일을 이어가게 됩니다.
다만 경제적인 부분 외에 박경림 집안에 문제가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박경림 아버지가 평상시에는 자상했으나 술만 먹으면 돌변해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원망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자 어느 날 박경림은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술을 드세요?"라고 물었고 이 질문에 아버지는 "두려워서 그래, 무서워서"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이는 박경림 아버지가 전쟁터에 있었던 현실이 아직도 생생해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박경림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죠.
3. 최연소 대상 수상 전성기가 '착각의 늪' 시절
아무튼 이렇게 어려웠던 집안에서 태어난 박경림은 어릴 적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을 가게 되면서 친구들 앞에서 진행하는 역할을 보고 그 후로도 전교생 앞에서 진행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웃어주는 모습을 보고 이때부터 MC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곤 박경림은 예일여자중학교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더니 동명여자고등학교 다닐 때는 옆 학교에 가서 사회를 볼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심지어 당시 유명하지 않았던 장동건을 자기 학교 행사에 초청하여 오게 했던 적이 있기도 했었죠. 다만 학창 시절 사회를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이 쉬게 되어 걸걸한 목소리가 쭉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박경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박수홍.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이 되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고등학생 때 '별이 빛나는 밤에' 돌발소녀로 출연해 사람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보이더니 인지도가 올라가자 1998년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에 정식 게스트로 캐스팅 되면서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2000년 방영한 '뉴 논스톱'에서 99화부터 출연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당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그렸고 '양동근'에게 "자판"이라고 불리며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자 2001년 당시 박경림 나이 22살 밖에 되지 않은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현시대에 박나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2000년 초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박경림은 독보적인 인기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방송 3사 인기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다 못해 영화나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더니 2002년에는 박수홍과 함께 박남매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인 '박고테'로 가수로서도 모습을 보여주게 되죠.
당시부터 인맥이 어마했던 박경림은 싱글 앨범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기라 앨범을 발표할 때 앨범에 11곡을 넣었는데 이때 인기 있던 작곡가를 비롯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들이 모두 동참하는 인맥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그리고 여러 곡 중에서 박수홍과 박경림이 부른 '착각의 늪'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20만 장 앨범이 팔렸고 보아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박경림이 하는 것 마다 모두 성공하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4. 유학의 길 선택 그리고 남편 박정훈과 결혼 스토리
그러나 2003년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교를 졸업하면 가장 먼저 할 일로 꼽아두었다고 하는 해외 유학을 결정하며 박경림은 유학을 가게 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점에 유학을 떠나는 박경림을 말렸으나 결국 유학을 떠난 박경림은 1년 동안은 어학연수, 1년 동안은 뉴욕 필름 아카데미 스쿨(New York Film Academy School of Film Acting)을 다닌 끝에 2년간 미국에서 공부한 뒤 유학 생활을 끝내고 2005년에 한국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2년간 유학을 다녀오면서 박경림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방송인으로 복귀했으나 2000년 초 유학을 떠나기 전 인기는 더 이상 받지 못했고 박경림의 인기가 추락을 하게 되죠. 그렇게 인기를 떨어지던 시기에 박경림은 2006년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진행을 하다가 당시 출연자였던 남편 박정훈과 인연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 프로그램 녹화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남편 박정훈은 박경림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연락처를 물어봤고 박경림 역시 남편 박정훈에 대한 첫 느낌이 좋아 번호를 주고받은 다음 그로부터 두 달 뒤에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박경림과 남편 박정훈은 교제를 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부분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결국 2007년 7월 박경림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워낙 넓은 인맥 덕분에 박경림 결혼식에는 엄청난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하자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결혼식을 올리게 되죠.
그 후 2년 뒤 2009년 1월 박경림 아들 박민준을 출산했고 하게 됩니다. 참고로 박경림 남편 박정훈은 1살 연하로 학력은 고려대 재료공학부 출신이며 직업은 삼성 SDS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는 일반인었는데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카이스트 정보미디어 MBA 과정을 마치느라 잠시 휴직을 했었지만.
복직했고 남편 박정훈이 1년짜리 코스로 대학원에 다니던 시기에 수업이 빠듯해 기숙사에서 잠시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언론에서 박경림 이혼이니 별거한다는 소문이 돌고는 했었으나 여전히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 박경림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 매번 지인들 앞에서 남편을 데리고 나가려 했고 그에 반면에 남편 박정훈은 박경림만큼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하듯이 서로가 다른 성격으로 다투고는 했었으나 이제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요.
5. 박경림 인기 추락 이유 그러나 섭외 1순위와 근황
다만 문제는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 2000년 초 최고의 전성기를 복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리하여 2007년에 박경림은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인기가 추락하는 이유를 언급하게 됩니다. 자신이(박경림) 인기가 추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유학 전 서민적인 이미지 었으나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 본인을 질투하는 시선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에 밝힌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이에 강호동은 본질을 잘못 파악하였다고 말하며 "그게 아니라 현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비호감도를 높이는 것 같다"라고 언급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유학 이후 방송에서 많은 활약을 하지 못하는데 이는 사랑 때문에 방송에 소홀한 것은 아니냐" 질문에 박경림은 "사실 그런 것도 있다"며 유학을 가기 전에 한 남자와 교제를 했지만 여자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미국에 있으면서 여자로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 너무 행복하다는데 솔직히 연애하느라 방송에 소홀한 것도 사실이었고 당시에는 녹화하면서 게스트들이 이야기가 길어지면 싫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른 대중들은 박경림 추락과 인기가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음이 없었고 과감했었으나 복귀 이후 다른 여 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고,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우려먹기, 자주 우는 모습으로 인해 유학 후 인기가 추락하게 된 이유라고 보인다고 합니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전성기 시절만큼의 인기는 받고 있지 못하지만 2010년 중반부터는 영화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MC 활동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평소 사회를 볼 때 박경림은 미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많이 공부해오고, 연예계에 인맥들도 많고, 진행실력도 무난 한 덕분에 업계 관계자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현재는 1순위로 박경림을 제작 발표회 MC로 맡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도 영화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등 사회자로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며 근황을 보내고 있고 2018년에는 2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 출판, 공연 등의 작업을 함께 해 온 사람들과 새로운 창작집단 '위드림컴퍼니'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오랫동안 마이크 잡고 많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박경림. 여기까지 알아보았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